우리는 거실 하나에 방 하나, 분리형 원룸에 살고 있다. 나는 방을 쓰고 룸메이트는 거실에 침대를 두고 쓰는데, 처음 이사할 때는 매년 번갈아서 방을 바꾸자고 했지만 우리의 영역은 5년째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아직 ‘자취방’ 정도인 주거공간에 두 사람이 같이 살고 있기에 부대낄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경우는 꽤나 드물다.

밥을 먹거나 청소를 할 때, 간식을 마련해 수다 떨 때 정도가 둘이 공유하는 시간이겠다. 그 밖에는 나름의 지정석에 자리를 잡고 각자 시간을 보낸다. 아마 네가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일은 글쓰기. 아무래도 에디터인 너의 주된 일이니까. 타닥타닥, 낮이고 밤이고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너의 타자 소리는 우리 집의 기분 좋은 백색 소음이다. 하지만 너에게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일종의 사명감이 들어있어 마냥 가벼운 소리는 아니다. 글로 패션, 인테리어, 향과 장소의 매력을 전하는 너의 일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취향의 발견이 되기도 하기에.

소파에서 작업을 하다가 혹은 침대에 누워있다가 거실로 나왔을 때 무심코 본 너의 (일하지 않을 때의) 시간을 돌이켜보자면 누군가와 연락하는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자칭 집순이라고는 하지만 상대방의 드립 하나, 고민 하나도 허투루 넘기는 일이 없는 너는 랜선 상에서도 인기쟁이다. 누구와 어떤 연락을 하는지 굳이 묻지 않지만, 표정을 보면 대충은 짐작할 수 있다. 좋아하는 사람과 연락을 하거나 재밌는 주제의 대화에는 희미한 미소를, 웃기거나 귀여운 짤을 봤을 때는 거의 입이 귀에 걸려있고, 심각한 얘기나 뭔가를 해결해야 할 때는 입을 앙 다물고 무표정을 지으니까. 

혼자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도 종종 보던데 이게 너에게는 쉬는 시간 같기도 하다. 하나를 끝까지 다 보기보다는 밥 먹을 때나 일하다가 잠깐 쉴 때, 자기 전에 조금씩 보더라고. 근데 혼자 보는 것치고는 추임새랄까 반응이 크다. 같이 보지 않아도 주인공이 슬픈지 위험한지 행복한지 나까지 느껴지거든. 편한 공간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라 더 그런지는 몰라도 아무튼 너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네가 얼마나 투명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이제는 네가 트는 노래만 들어도 기분을 짐작할 정도이니. 내일 아침은 어떤 선곡을 하려나